목화(Cotton)  (綿花)·초면(草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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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배장

목화하면 문익점 선생을 생각하게 되고 남평문씨하면 목화를 생각하게 됩니다.
목화는 우리 국민들께 많은 유익함을 주었으며 입고 계신 내의는 거의가 면(cotton)입니다
세계화로 우리보다 자연조건이 좋은 곳들과 경쟁이 되지 않아 작물로는 재배를 하지 않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도 목화의 재배가 늘고 있습니다. 원예작물로 재배되기 때문입니다

 

목화 씨앗 분양

추위에 떨던 백성들을 따뜻하게 하였던 목화는 현재는 거의 수입하고 있어 구경조차 어려운 식물입니다 꽃이 좋고 다래가 맺히며 목화는 겨울을 견디니 관상용으로 좋으며 토질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기에  화분에서 기르면서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도록합시다

화 씨앗을 부산종친회에서 무료분양 하였으나 종친회의 사정으로 인하여 중단합니다
아래의 업체로 연락하시면 유료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링크명

             설                 명

목화시배지

 사적 108호 문익점 목화시배지 소개

목화축제

 농협에서 주최한 목화축제 동영상

목화마을

 원주시 문막읍 건등3리 목화체험장, 목화제품 판매등

e방앗간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 967-2 목화씨앗 가공판매
 ☏054-843-3917 ☎016-821-9676

권외진 여사

경남 산청군 단성면 성내리 187-5 목화연구원장
☏010-2549-1722
산청의 목화재배 및 실뽑기 베짜기 기능인을 역임함

 칠성면업사

임채장(함양군 함양읍 용평리 607-23)  ☏011-550-2328 ☎055-963-2328
목화타면 및 솜판매 이불제작,

소개를 원하는 사이트가 있으시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목화의 품종과 분류

학  명

 Gossypium herbaceum Linn

원산지

 동아시아

 꽃 말

 어머니의 사랑

염색체수

  2n=26

개화기

 8-9월

    분 류

 아욱과 목화속 1년초

품종

① 해도면(G. barbadense):열대 남아메리카 원산
    가. 서인도제도에서 도입하여 미국에서 재배된 것
    나. 중앙아메리카에서 나일강 유역으로 도입된 잡종으로 섬유길이가 짧고 갈색이다
    높이 약 2 m. 꽃은 밝은 황색 바탕에 자주색 반점이 있다. 열매는 3조각으로 갈라지고
    솜털은 종자 끝에 달 리며 백색으로 명주실 같은 광택이 난다. .  
② 육지면(G. hirsutum):과테말라·페루·멕시코원산 만생종  북위 37 °까지 경제적인 재배됨
    미국 목화지대에서는 대량제배하면서, 1,200종류 이상의 품종으로 발전시켰다.
    솜털은 종자에서 잘 떨어지며 백색으로 길고 꼬임성이 좋아 방적원료로 최고품이다.
    꽃은 백색 또는 담황색이고 반점이 없다.  
③ 인도면(G. arboreum):인도·아라비아·아프리카에서 재배된 다년생 목본으로
     재배의 역사는 기원전이나 현재는 인도 이외 지역에서는 재배하지 않으며,
     섬유가 거칠고 짧지만 매우 질긴 것이 특징이다.
④ 아시아면(G. herbaceum):아시아 지역의 재래종. 조숙성으로 고위도 지방에서도 재배됨
     인도에서는 오래 재배되고, 이란·중국·한국·일본에서 집약 재배함 미국에서는 재배 않음
     꽃색에 백색과 홍색이 있고 솜털은 종자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섬유가 짧고 꼬임성이 적어 방적에는 부적하여 카펫·담요 등과 양털과 섞어서 사용한다. 

한국의
목화

충선공(忠宣公) 문익점공이 아시아면의 목화씨를 들여오시고  
손자인 문승로는 의성에 목화를 보급했고,
손자인 문래는 실뽑는 기구인 물레를 만들었으며 ,
손자인 문영은 베짜는 기구를 만들어 보급하였습니다

시배지 명예관리인 정정대씨(58)는 "목화는 꽃과 목화송이가 함께 아름다워 꽃이 두번 핀다고 말하고 목화 송이는 3~5개의 뭉치가 한 올로 이어져 있는데 길이는 1KM를 넘으며 옛날에 삼베, 갈포등 갈색이나 황색 옷을 입던 우리민족이 흰 목화로 만든 옷을 입으면서 백의민족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일보 1997/12/12 19면  최학림기자)

 

목화의 형태와 용도

기후

목화의 자람에 고온이 필요해 연평균 15℃ 이상인 열대에서 온대의 남부에 걸쳐 재배된다.
재배의 북방한계(限界)는 북위 37°였으나 품종이 개량되어 현재는 몽골에서도 재배된다
햇볕을(日照) 좋아하여 자라는 동안 날씨가 40%이상이 맑아야 하고, 특히 결실기에는 맑은 날이 계속되어야 열매 맺음이 좋아 미국 남부의 목화지대가 적지로 목화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다.

토양

이어짓기(연작)로 인하여 생기는 장애가 적으며 토양에 대한 적응성이 크다.
산성에는 약하나 염분에는 강하므로 염분이 많은 알칼리성 토양에서 재배되는 것이 보통이다

형태

꽃모양은 무궁화나 접시꽃과 비슷하다
꽃 밑에 모서리가 둥근 삼각형 모양의
3개의 포엽(包葉)이 꽃잎을 갈고리처럼 움켜쥐고 있는데
안쪽에 꽃받침이 있고 꽃받침 속에서 꽃봉오리가 생겨나 길게 자라나는 모습도 아름답다.
목화는 열대 지역에서는 다년생이지만 온대에서는 겨울을 나지 못해 매년 씨앗을 뿌린다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키가 0.6∼1.8m이다.
잎은 2∼4개가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지며 길이는 5∼10㎝정도로 영양에 따라 다르다
여름에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결과지(結果枝)가 나와 각 마디에 꽃이 핀다.
꽂잎은 5개로 줄기는 약 6㎝정도이며 꽃이 필 때는 크림색이나 점차  붉게 변하여 꽃이진다.
자화수정(自花受精) 후에 생기는 삭과는 길이 3∼4㎝로 복숭아 열매 모양이고 녹색이며,
성숙하면 삭과는 갈색으로 되고 갈라져 열리면 목화가 나타나게 된다(개서)
목화 안에는 3∼5칸이 있고 1칸에 7∼8개 정도의 씨앗이 생긴다.

실뽑기

섬유는 긴 것이 해도면이 5㎝, 육지면은 3㎝, 아시아면은 2㎝ 정도이다.
섬유는 전체가 꼬이는데 꼬임은 실을 만드는데 중요한 성질로 해도면이 많고, 아시아면이 적다.
실면(實綿:씨앗과 솜이 함께 있는것)을 따서 공장에서 조면기로 씨를 뺀 것을
조면(繰綿) 또는 목화(木花)라 하고 조면율은 육지면이 30∼35%, 아시아면이 25∼30%이다
씨앗(綿實)은 16∼20%의 단백질과 12∼20%의 기름을 함유한다.

용도

○솜  : 고급품은 면사·면직물 등을 만들고, 품질이 나쁜것은 이불솜, 탈지면 등에 이용된다.
       솜화약(火藥)이나 각종 충전재(充塡材)로 사용된다.

목화씨 : 기관지의 천식과 디스토마의 구충제로 사용되었고

○면실유 : 압착 또는 용매추출(溶媒抽出)로 짠 기름으로 품질이 좋고 값이 싸 튀김기름 등에 사용.
             냉각법으로 고형분을 제거한 것은 샐러드유·마요네즈유에 적합하고 마가린 원료가 되며
             동물성지방과 섞어 라드(lard)를 만들며 비누 원료에도 쓰인다
목화다래 : 목화의 어린 열매는 단맛이 있어 날 것으로도 먹으며 기침에 효가가 좋다
씨껍질    : 사료나 비료로 이용되고 약재로 사용된고 삶은 물을 바르면 아토피에 효과가 있다
뿌리,줄기 : 8시간 정도 고은 물로 단술(감주)를 만들면 약효가 있고 맛도 좋다 

 

각 국의 목화 재배역사

인도

아세아 목화로 기원전 수세기부터 목화공업으로 유럽에 알려졌으며
모헨조다로유적(현재 파키스탄領)에서 기원전 2000년 경의 지층에서 면사가 발굴되었다

페루

아세아면이 BC1500년경부터 이용되었고 인도와 별도로 직물을 만들었음이 밝혀졌으며
그 후 동남아시아·아라비아·아프리카 및 남부유럽으로 목화재배가 퍼졌다

중국

아시아면이 11세기경부터 화중(華中)·화남(華南)에서 중요한 작물로 재배되었다

이집트

서양인들이 해도면이 서아프리카나 수단에 전해져 카리브제도 면이 탄생되었다.

이집트

고대부터 섬유작물로 아마(亞麻)가 생산되었지만 기원전부터 목화가 이용되었다.

중남미

콜럼버스가 오기 이전부터 중남미·서인도제도 일대에서 목화가 재배되고 있었다

영국

인도의 목화를 파나마에서 재배를 하고 미국에 전함

미국

1740년경 버지니아에서 재배되고 영국의 랭거셔에 대방적업이 일어나자
미국은 대규모 기업재배화 됨과 방적에 유리한 육지면은 세계 여러나라로 퍼져 생산되었다

한국

1363(공민왕 12)년 원(元)나라에 서장관으로 갔던 문익점(文益漸)이 목화씨를 숨겨와
경남 산청에서 장인 정천익(鄭天益)과 함께 재배하여 전국 각지에 보급되었다

1904년부터 목포(木浦) 면작 시험장(현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 목포지장)에서 육지면 품종 육종시험을 실시하고 있는데 목화 품종으로는 목포 6호·목포 7호·수원 1호 등이 있다

문익점선생이 가져오신 목화는 일제때 육지면의 재배 권장에 밀려 자취를 감추었다
해방후 목화임업시험장에서는 일본 작물시험장에 보관한 씨앗을 구하여 왔으며  산청목화시배지에서 실을뽑고 베를 짜는 시연을 하던 외손인 권외진여사(016-549-1722)께서 산청의 도천서원앞과 강누리에서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다.

 

목화 화분 재배

길게 자라는 꽃봉우리와 희게 피었다가 붉게 지는 꽃은 물론이요
목화가 피기전의 열매인 다래도 구경거리이며 하얀 목화솜은 더욱 좋습니다
옛부터 목화는 꽃과 솜꽃으로 두번 꽃이 핀다고 하여 화도화라고 했습니다
화분에서 길러도 햇볕과 양분만 좋으면 생명력이 강해 잘 자랍니다.
.

목화를 키우면서 자연을 배우고  헐벗은 백성을 사랑하신 익점 선조님의
백성을 사랑하신 솜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정을 느끼도록하고
관찰일지도 적어서 관찰력과 기록하는 습성을 갖게하고 정서순화에도 도움이 되게 합시다
목화솜은 쿠션이나 방석을 만들거나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으로 사용해도 좋습니다.

화분에서 목화를 길러 자녀의 관찰력과 정서순화에 도움을 줍시다.

과정 작업 설명

씨앗준비

전년도에 수확한 솜에서 목화씨앗을 가려냅니다.
파종전에 씨앗을 세수비누를 이용하여 씻습니다(솜털의 지방분과 밀납을 제거함)
맑은 물로 비눗물을 씻어낸 후에 물에 담그고 위에 떠오르는 쭉정이 씨앗은 버립니다.
부산시 금정구 부곡3동 23-2번지 부산 종친회에 우표를 동봉한 반송용 봉투(주소적고 우표붙인것)를 보내면 선별된 목화씨앗 20여개를 보내드립니다.

씨뿌림

아파트인 경우 남부지방에서는 4월 하순 중부지방은 5월 상순이 좋습니다
대량으로 밭에서 재배할 경우는 1개월 정도 늦게 뿌리는데 씨앗을 나뭇재와 오줌을 넣어 반죽하여 버무려서 뿌렸으나 황산으로 훈증 소독하여 씨앗을 뿌립니다.

씨앗뿌림

많은 씨앗은 포토를 이용하여 씨앗을 뿌리고 소형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보온합니다
소량이면 몇개의 종이컵을 준비하고 물 빠짐 구멍을 뚫고 흙을 담습니다
씨앗의 뾰족한 부분이 아래로 가도록 3개씩 심고 씨앗 높이의 2~3배의 흙을 덮습니다

관리

2~3일에 1회 정도 물을 주어 흙이 마르지 않게 합니다 물기가 많으면 좋지 않습니다.
높은 온도에서 싹이 잘 나오니 햇볕 좋은 곳에 두고 투명 비닐로 덮어주면 좋습니다
10여일 후 새싹이 올라오면 비닐을 벗겨내고 떡잎이 나오고 자라면서 본잎이 나오게 됩니다

쏙아내기

파종 20여일 후(키 10cm정도) 약한 싹들은 뽑아내고 종이컵에 한 개의 싹만 남깁니다

겨심기

아낸 10여일쯤 후 목화의 키가 15cm 정도 자라면 밭에 옮겨 심거나
지름 30cm 정도의 화분에 옮겨 심어 햇볕이 잘드는 곳에 두고 첫날은 햇빛을 가려줍니다
배양토는
퇴비5, 흙3, 모래2,  정도이며 영양분이 많은 편이 잘 자랍니다

자람관찰

7월 초순경 꽃 봉오리가 맺기 시작하고 각 마디에 잎이 달리고 가지가 무성해 집니다.
키가 작고 가지가 많은 목화가 튼튼한 목화로 열매가 많이 맺습니다.

순자르기

꽃 봉우리의 자람을 돕기 위해 봉우리 없는 줄기의 끝을 때때로 잘라 줍니다
화분에서 키울 경우는 겹쳐서 햇볕을 못받는 잎이나 가지를 자르고 모양을 만듭니다

꽃 봉오리가 맺히고 흰꽃봉우리가 보이면 다음날 오전 7시~10시 사이에 꽃이 핍니다
꽃 잎은 5장으로 흰색, 백황색, 홍색으로 첫날은 엷은 크림색이지만 다음날은 붉게 변하여  떨어지고 다른 봉오리가 계속 피며 벌이나 나비가 없어도 열매를 맺습니다. 

다래

꽃이 지고나면 3~4㎝ 정도의 원형의 봉우리가 생기고 20일 가량 계속해 자랍니다(다래)
다래는 단맛이 있어 어린이들이 간식으로 따먹다가 들키면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북돋우기

왕성하게 자라면 퇴비를 추가로 넣어주고 주변이 흙을 모아 줄기쪽에 쌓아 높여줍니다

솜꽃

다래가 익어서(재래종 30일 육지면 43일) 갈색으로 변하고 서서히 벌어지면서 목화 솜이 보입니다. 관상용으로 두면 겨울에도 솜을 볼수 있습니다

거두기

먼저 익은 것 부터 순차적으로 따서 햇볕에 3일 정도 말려서 실을 뽑거나 솜으로 사용함.
솜은 지방분이 많아 물의 흡수가 잘 되지 않아 약솜은 지방분을 빼어 탈지면으로 사용함

병충해
방제

진딧물 : 울숙주에서 알로 월동한 것이 4월 중~하순에 부화하여
             5월하순~6월상순에 유시충이 나타나 점차 여름숙주로  옮겨진다
목화
의 즙액을 빨아먹으며 각종 바이러스를 매개하고 그을음병을 일으켜 자람을 방해함
진딧물약을 많이 뿌리면 목화가 죽으니 잎에 소주를 뿌려도 효과가 있다.

잎말이벌레 : 애벌레는 목화잎을 먹고자라서 생장을 방해하고
                   자라서는 목화 잎을 말아 집을 짓고 알을 낳으니 말린잎은 따서 버린다 
                   씨앗을 황산으로 훈증한 경우 발생이 줄어든다

 

문씨와 목화

충선공 익점公(12세 충선공파 파조)과 산청시배지

문익점선조님은 고려때 원나라 사신의 서장관으로 가시니
고려왕을 폐하고 덕흥군을 왕으로 옹립하라는 원의 황제의 명을 거역하여 월남으로 귀양가고
3년뒤 북경으로 오면서 목화를 보고는 국민에게 이롭다는 판단을 하시고는 국외에 반출을 금하는 품목이라 신변의 위험을 각오하고 숨겨오셔서
고향인 산청에서 기적적으로 재배에 성공하셨다
이후 목화는 베짜는 기술과 함께 온나라에 빠르게 전파되어 삼베나 모시로 떨었던 서민들도 솜옷과 솜이불로 따뜻한 겨울을 보내게 되고 의생활을 비롯해서 생활 문화의 혁명과 경제적으로는 목화재배와 농한기의 김쌈으로 농가 경제의 혁명과 대일수출로 외화획득에도 큰 몫을 했습니다

가벼운 무명베는 화폐대신 통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조에 협조하지 않고 벼슬도 사양했지만 역대 왕들은 문익점의 공로를 치하했는데

왕들은 예장을 하고 벼슬을 추증하며 부조묘와 강성군 부민후에 봉하고
후손들의 등용과 면천등을 누누이 명하였으나 이는 실천되지는 못했습니다.


익점공은 목은(이색) 포은(정몽주)과 함께 고려를 지키려고 이성계일파의 전제개혁에 반대하니
고려사 열전 문익점 편의 기록에는  조준의 말도 되는 않는 탄핵이 수용되어 파직되었으며
문익점의 열전임에도
그 씨를 빼는 기구와 실을 켜는 수레는 다 정천익이 만들었다고 적었는데

고려의 역신들이 고려사를 적었으니 문익점에 대한 폄하는 인정하지만 모두를 다 했다는 정천익公은 열전조차 없으며 시호나 왕들의 교지 한장 받은 기록이 없으니 역신들의 실수입니다.


정천익공의 후손들은 목화시배지 옆에 세운 비석에 원에가서 목화를 가져왔다고 적어 자신의 선조를 욕되고 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를 살린 문익점공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하여
산청에 건립한
사적 108호 문익점 목화시배지에 대한 명칭변경 소를 제기하여
목면시배유지로 명칭이 변경되었는데 사위와 장인이었던 문익점공과 정천익공의 입장을 보아두 문중이 화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입니다.

 

우리의 세거지인 산청을 지키지 못한 사유는 왕권을 강화하던 태종때에 문익점공의 조카인
가학선조의 난으로 후손들은 뿔뿔이 숨어야 했기에 선영조차 돌보지 못하였고
누대의 세거지였던 산청(구지명 강성)세거지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목면의 보급에 따른 공적에 대해서 일찍이 秋江 南孝溫은,
"한 집안으 로 말미암아 고을이 혜택을 입게되고,
한 고을로 말미암아 온 나라가 혜택을 입게 되었으며,
만세토록 천지와 더불어 무궁히 그 혜택이 끼칠 것이다‥  
그 깊고도 높은 공적을 무어라 이름할 수 없다"
라 하시고

후세에 '木綿公'이라는 별칭을 얻었을 만큼 목면의 전래가 그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공적임은 말할 나위 없다고 하셨습니다

한편 익점공에 대한 후대의 평가를 살펴보면,
그는 道學의 창명과 덕행 및 충절 때문으로도 당대 및 후세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인물로 평가되었다. 金宗直을 비롯해서 鄭汝昌, 金宏弼, 曺植, 李滉, 宋時烈 등한 시대를 대표하는 유학자들이 한결같이 그가 끼친 '衣被生民之功'을 찬양하는 한편,
그의 道學과 德行 忠節을 더불어 칭송하는 시문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문익점의 공적은 후대에 이를수록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영조는 그의 후손에 대해서 거듭되는 특전을 내리면서
"우리 나라가 3백년 전 이래 衣冠 文物이 및나게 일신된 것은 실로 江城君이 목면씨를 가져옴에서 비롯된 것이니 공이 강성군 보다 클 수 없고 덕이 강성군 보다 훌륭할 수는 없다"라는 극찬을아끼지 않았다. 라고 적었다.

                                     동정의 역사
동정은 한복의 목이 닿는 부분에 덧 붙이는 좁은 백색천의 테두리를 말합니다.
동정을 달 게 된 유래는 .
세종원년 기해년 강성군 문익점 할아버지의 목면으로 인하여 이룩된 산업의 혁명과, 외화획득의 공로,
의류혁명의 위대한 공덕을 이 세상에 영원히 기념하는 뜻으로
세종임금이 특별히 만조백관을 모아 조야에서 명하기를 "이나라 백성이면 남자든 여자든 옷을 입는 것은 문익점 선생의 공덕인고로 동정을 달아 기리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색깔있는 동정을 달지 못하게 하고 흰 동정만 달 게 한 것은
문익점 선생의 사후였기 때문에 영원히 상복을 입는다는 뜻입니다

 

승로(承魯)公(익점公의 장손)

의성현감으로 계시면서 목화 재배의 적합여부를 시험하신후에 적합함을 아시고는
의성이 목화의 주산지가 되게 하셨는데 현재의 경북 의성군의 공룡발자국이 있는 곳으로 가는
고갯길옆에 위치한 목화 시배지는 승로 선조님이 목화의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 시험재배 하던 곳이며 목화 시배지가 있어 목화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목화재배로 고을을 부강하게 하신 공을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 있지만 지금은 목화를 전량을 수입하고 있지만 해소의 약이나 결혼시 함에 오곡을 보내는데 목화를 보내기도 하여 아직도 전국에서 목화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곳이 의성이며(참고자료 e방앗간 참고).음력 8월에 공을 기리는 제를 지금까지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의복사의  일대 혁신을 일으켰던 면(綿) 생산은 목화 씨앗부터 직조법의 발명과 보급에 이르기까지까지 오로지  문익점 일가의 공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한겨레21 1998년 10월 22일 제229호)

참고글 : 목면유전 기념비(의성)  면작 기념비(의성)

 

래(萊)公(익점공의 손자 이곡파 파조)

문래선조님은 목화솜을 회전시키는 기구를 만들어 서 실을 뽑는 기구를 만드셨는데 문래가 만들었다 하여 문래가고 부르다가 물래(자음동화)로 불리기 까지 하였다.
그러나 문익점의 장인인 진양정씨 측에서는 목화의 공로를 가로채기 위하여 이름이 외자인 것을 기화로 족보까지 변조하여 정문래라고 하고 이런 자료를 배포하고 홍보하여 검증없이 실은 일부 사전과
전북메일신문에서도
정천익은 공민왕 때 문과에 장원하여 판부사(判府事), 전객령(典客令)을 역임했다. 그의 아들 정문래(鄭文來)는 물레와 취자차(取子車)를 통한 제사법(製絲法)을 고안했다. 는 기록도 보입니다만 아무런 의의 제기 없이 팔리고 있으니 잘못에 대한 사과와 시정을 요구하여 관철되지 않으면 판매가처분 등의 소송도 불사해야 하건만 일회성 분노로 끝을 맺고 보고만 있으니 통탄할 일입니다만 손 바닥으로 가린 하늘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지만 .장인과 사위이요 우리들의 외할아버지의 가문인데 함께 목화를 보급하였다고 할 일임에도 이런 식으로 공을 다투어야 하는지 답답한 심정입니다.

 

영(英)公(익점공 손자)

문영선조님은 베를짜는 기구를 만들어 짠 베를 문명베라고 하다가 무명베로 이름이 변하였는데 추위에 떨던 국민들을 따뜻하고 위생적인 삶을 유지하게 하셨고 목화재배로 농가수입증대와 농한기인 겨울에 베를 짜게 되니 새로운 농가수입원이 되었고 무명베의 대일수출로 외화획득에 큰 몫을 하게 만드신 분입니다.
한겨울에도 작물을 자라게 하는 현재의 비닐을 생각하면  옛날의 목화의 쓰임을 이해 하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겨레를 백이민족이라고 하는 말도 무명베로 흰옷을 지어입기 시작한 후의 일이기도 하니 영 선조님의 발명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만  하나 일부 사전에서는 정천익의 아들 정문영이라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

 

목화 보급실적

작업일지(2004년)

                             작    업     내    용

2
0
0
4

1

6

목화씨 확보를 위하여 문승열 국장님께 씨앗 부탁 및 확보

20

목화씨앗 확보 및 목화씨앗 분리작업(씨아사용) 완료

30

울진군청 산림계에 목화씨앗 택배로 발송

3

5

목화씨앗 반신용 봉투 발송 및 택배 발송 시작

23

문승열님 목화씨앗 추가 보급

26

목화재배장에 퇴비넣기 및 밭갈기(외주 작업)

27

목화심을곳에 검정비늴 덮기(예상 평수 100평)

24

종친회화단 땅고르기 및 퇴비작업과 조경작업

24

파종용 비닐하우스 제작

4

1

종친회 화단 비닐하우스 제작 및 목화 500포트 파종작업

13

발아률 75% 빈 파종상자를 모아 2차 파종함

16

산악회 총회시 묘종 분양(35명분)

18

목화 밭갈이

19

종친회 운영위원 묘목분양

24

멀칭작업 및 목화밭에 묘목이식 300주(씨앗 확보용)

26

종친회 화단에 목화 이식(50주)

27

대종회 총회 참석자 묘목 및 씨앗 분양(35주)

 

                             작    업     내    용

2
0
0
3

2

1

부조묘 및 금사문중에서 목화씨앗 30,000여개 확보함

2

20

인터넷을 통하여 남평면에서 요구한 목화씨앗을 남주(전남장흥)님께 발송 의뢰함

4

1

홈페이지와 우편으로 씨앗 발송을 시작하여    4월말 현재 개인 30여명과
서울수유초등학교에 씨앗 7,000여개 택배로 보냄

8

2002년도의 파종 적기를 놓쳐 성과가 적었던 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간이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씨앗을 비누로 씻은후 선별하여 400개의 포트에 목화씨 2개씩을 파종함

16

절반 정도가 발아되고 계속하여 새싹이 올라와 일주일후 70% 정도 발아됨

27

아직 어린 묘목중 50여포기를 선별하여 제주종친회 두수파 총회시 전달

28

비닐피복의 제거가 늦어 충분한 햇빛이 들지 못하여 웃자라 비닐을 제거하고
잡초제거 작업중 현장에서 분양을 요청하는 분들 10여명께 보급함

30

목화재배장에 이식할 장소를 선정하여 지형을 고름
120포트를 추가파종하여 비닐로 간이 보온장치를 만듬
4월중 반신용봉투로 신청한 40개소 발송 및 서울세검정 초등학교에 씨앗 발송

5

13

종친회 화단에 목화이식작업 및 파종과 현장에서 10여포기 분양함

17

목화 재배장 작업 및 금사집 목화분양 20주
비닐제거 및 목화 잡초제거작업 및 현장에서 10여포기 분양함

24

남평문씨 목화재배장에 목화 50주 이식 및 씨뿌림 100주

27

거벌집 상의단에 목화이식 20주 이식작업 및 북면집 목화이식

6

9

인터넷을 통한 보급 집계는 반신용 봉투 40건 택배 5건의 씨앗보급과  묘목택배 6건
종친회관에서 운영위원 및 일반인에게 보급한 목화묘목 집계 150주

12

도천서원, 송호서원, 대병초등학교, 용원서원, 고간원 목화이식
매산서원은 목화재배중이라고 하였고, 통일동산의 공신당은 조경을 하지 않아 심지못함

15

종친회관 30주 재배 및 농장에 50주 재배 관리 중

10

1

송호서원은 절반 정도만 자랐고 도천서원의 목화는 보통 작황이었고  고간원은 왕성하게 자랐으며 합천의 대병초등학교에서는 많은 수확이 있었으며 용원서원은 확인하지 못함
종친회 농장은 태풍피해로 작황이 좋지 못하였고 북면집 이식분은 열매를 맺지 못함

 11

 15

금사집 제실에서 제배한 목화 및 종친회 수확분으로 내년에 보급할 씨앗을 준비함

 

 

실적보고(2003년)

구       분

내                                   역

홈페이지

4개 학교 씨앗 택배

개인 : 40여명

묘목택배  5개소

시외 이식

도천서원, 송호서원, 용원서원, 고간원,

부산시내 이식

금사문중

북면문중

거벌문중

 만덕럭키apt

 

 

기타

종친회운영위원 50주  

일반분양 150주

 

목화 보급작업의 마무리인 시외의 서원에 목화를 이식하여 참석자들이 목화를 가져가 가정에서 기르도록 하기 위하여 6월 11일 퇴비와 묘목을 차에 실어두었는데 함께 가기로 했던 영수님과 차범님은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6월 12일 06:30 병준총무와 명륜동에서 만나 메가마트에서 물건을 구입하여 07:10에 동래지하철역에 우산을 쓰시고 계시는 신만부회장님을 만났고 만덕에서 기다리는 병준(충선공파 상임부회장님)이 승차하여 빗속에 남해안 고속도로의 남강휴게소에 도착하니 09:00였고 10여분을 쉬었다.
다시 출발하여 앞차가 급정거하여 추돌할 번 하였는데 상행선에서 사고가 나서 몇중 충돌로 견인차가 도착해 있었고 가드레일의 철망이 하행선의 추월선의 길을 가로막았어도 사고 표식을 하지 않아 다른 차들이 다시 사고를 당할 위기를 방치하고 있었다.
09:30 도천서원에 도착하여 관리인과 의논하여 입구의 밭에 30여분간 비를 맞으면서 30여포기의 이식작업을 하였는데 산청 일가님들이 명칭이 변경된 문익점 목화시배지가 목면시배유지로 명칭이 변경된 것을 환원하여 위하여 노력중이신 것은 감사하나 문익점선조를 모신 도천서원에 목화가 없음을 항시 안타까워 하였기에 심은 후에는 마음이 후련했다.

10:50 송호서원에 도착하여 점환(합천종친회장)님과 함께 재실입구에 목화 15주를 이식하였는데 비는 계속하여 내려 작업에 지장이 되긴 하지만 목화의 활착에 도움이 되겠기에 비가 싫지가 않았다
11:20 대병국민학교에 15주를 기증하였는데 학교에 통학버스가 두 대나 있지만 학생수는 60여명이라고 하는데 젊은이들이 없으니 마을에 어린이가 없다는 설명에 시대의 변화를 통감하고 차나 한잔 하자는 점환님이 권유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고사했으나 음료수를 받아 용원서원으로 향했다.

12:15 용원서원의 문경제님께 전화를 하니 곧 가겠다고 하시는데 아드님이 오셔서 경제님은 지난 1월에 별세하셨다고 하신다. 서원입구의 잡초밭을 일구어 목화를 심었는데 비가 조금 약해졌고 앞의 하천에는 다리공사 중인데 작년의 태풍으로 다리가 떠내려 가서 다시 놓는다고 한다.
13:00 거창 가조의 식당에서 돈육을 구워 식사를 하고 커피까지 마신후 14:05 출발하여 대구를 향하는데 졸음이 쏟아지고 병준총무도 졸린다하여 길옆에 차를 세우고 잠시 쉬었다 출발했다.
15:00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고 16:10 추풍령에서 잠시쉬고 17:00유성을 지나 고간원에 도착하니 18:15인데 관리위원장은 멀리 계서서 참석치 못하고 우리가 장소를 선정한 신도비앞에 잡초를 제거하고 밭을 일구느라 시간이 제법 걸렸는데 문가 따님들 두분을 만나서 돌보아 주기를 부탁했다.
고간원을 떠나면서 매산서원의 헌납회장님께 연락하니 매산서원에는 목화를 심는다고 하여 천안에서 고속도로에 올리고 잠자리를 구하기 위하여 20:00 성남에서 나왔는데 해는 지고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데 여관을 찾으려니 비까지 내리고 있어 처량한 심정들인데 겨우 여관촌을 발견하고 보성여관에서 4인 일박에 35,000원에 약정하고 방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밥을 하는동안 쭈구미를 삶아 소주잔을 나누면서 오늘의 일정에 대한 평가회를 하고는 식사후에는 바둑 한판 두고는 잠이 들었다.
 
06:30 기상하여 남은밥에 라면을 구입하여 아침식사를 마치고 파주를 가기위하여 지도를 보며 서울을 들어가지 않으려고 의정부로 돌아 가는 길을 택했는데 의정부에서 많이 막혀 오히려 늦다.
09:40 길옆의 윤관님의 묘소에 참배를 하였는데 넓은 잔디밭이 인상적이었고 곧곧에 돋아난 토끼풀은 제초제를 뿌려듯 말라있으나 보기가 흉한데 석물들은 화려하고 심지어는 말무덤과 가마의 무덤까지 있었는데 우리의 선조님중 어느분의 묘소에도 국가에서 이렇게 신경 써주는 묘소가 없음에 후손이 몸둘 곳을 모르겠다.
 
파주에는 병준총무의 친구분인 평산신씨 산소가 있는데 벌초를 가면 옆에 있는 산소들도 함께 벌초를 한다는데 좌판에 남평문씨라고 쓰여 있으나 방치되어 있다고 하여 찾아보기로 하였으나 아는 것이라고는 파주시 광탄면 신산리 외화산이라는 것 뿐이기에 지도를보고 신산리에 도착하여 묻고 물어서 군 작전지역 내에 있는 산소를 찾았더니 관리가 잘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단기 4320(서기 1987)년 사손 상진님이 세운 것으로 되어있었는데  선조님들께 배를 올리고 부산에 도착하여 족보를 찾아보니 순평군(8세달한)의 장손가계로 파주파의 휘 송수(12세)묘소와, 휘 수덕(13세)묘소는 다른 기슭에 있다고 하였고 간(14세)묘소의 좌판은 글을 읽을 수 없었고 휘 미수(15세)묘소는 교하법흥리에 있으며 휘 응벽(16세) 숙례(17세) 휘 현부(18세)묘소가 모셔져 있었다.
 
11:15 통일공원에 도착하여 필름을 한통 구입하여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육탄10용사 및 전몰장병들의 안식처이고 고려 충신을 모신 공신당이 없어 물어보니 통일동산을 찾아야 한다기에 가르쳐 주는 방향으로 가니 자유로인데 서울로 내려가기에 임진각과 판문점을 먼저 본후에 가자고 하여 유턴해 상행선을 이용해야 했다.
11:45 임진각에 도착하여 경의선 철도 중단점에 전시된 기차의 모형과 대북방송을 들으면서 자유의 다리를 건너면서 임진강을 경계로하여 분단된 조국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데 놀러온 유아원 어린이들에게 통일을 설명하는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의 세대의 분단이 저 어린이들에게 전해서는 안 된다는 기도같은 통일의 염원을 담아본다.
땅굴등의 관광이 가능하지만 2시간30분이 걸린다하여 포기하였고
식사때가 되었기에 냉국수로 식사를 하고 북한물건 판매소에서 북한소주도 2병을 구입하였다.

13:10 판문점을 가기 위하여 나섰으나 서울쪽으로 가고 있어 한참을 달려서 차를 돌려서 자유로를 북상하였으나 얼마 가지 않아 통일의 관문에서 출입을 통제를 하여 차를 돌려야 했고 13:10 통일동산입구에 도착하여 축구선수촌 뒤에있는 공신당을 올려보니 건물은 지었지만 계단이나 진입로가 없어 배수로를 따라 올라야 했는데
13:20 입구문은 잠겼고 공사인부들의 숙소는 비었지만 잔디를 심고 있는 듯 남은 잔디가 쌓였다.
아래를 보니 급경사의 산정에 건물을 지어 건물아래는 45도 정도의 경사인데 건물이 견딜 수 있을까하는 염려가 되었고 뒤쪽은 평지여서 건물을 뒤쪽으로 지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들을 나누었는데 조경이 되지 않았으니 목화심기는 포기해야 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가기위하여 주차료 2000원을 내고 차를 세워 두어야 했고 셔틀버스를 이용해 오두산 전망대에서 다시 2000원씩의 입장료를 내었다.
망원경은 500원이나 날씨가 흐려 뿌연 강만 보일뿐이어서 포기하였고 비디오를 보는데 졸려서 혼이났고 전시실에는 2000년에 발행한 북한 교과서에는 두끼를 굶고 월사금 독촉을 받는 남한아이들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중학교도 의무교육이 된지 오래인데 없어진 언제의 자료인지 알 수는 없으나 월사금을 말하고 끼니를 굶는다고 가르치니 자라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거짓말을 가르치니 골만 깊어 지는 것이 안타깝고 큰나라들에 쌓인 작은 나라가 그나마도 반으로 나누어져 있으니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하련만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으니 암담해진다.
14:30 셔틀 버스로 전망대를 떠나면서 공신전을 못보았으니 1시간이면 된다고 하니 연천의 숭의전을 다녀 오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왕복 2시간과 구경30분이면 너무 늦기에 포기해야 했다.
자유로를 따라 서울방향으로 가는데 서인천으로 가려 했지만 갈림길을 놓쳐 버려서 서울시내로 들어와 한강을 따라 계속 내려오면서 수많은 다리들을 보면서 한남대교에서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니 15:30인데 생각보다 빨리 왔기에 다소 마음이 놓인다.
16:00 가흥휴게소에서 잠시 쉬고는 17:50 금산에서 신만부회장님이 저녁을 사셨고,
19:40 산청휴게소에 도착하여 목화를 구경하고 출발하는데 라이트를 켜야했지만 아는 길이어서 염려될 것은 없고 길에 막힘이 없어 21:00 진영에 도착하여 병준부회장님이 짜장을 사셨는데도 대충 계산하니 도로비 및 주차비 및 연료비 등의 차량운행비용이 15만원 정도이고 숙박과 식사등으로 10여만원은 넘은 듯 하다.
21:40 만덕에서 병준부회장님이 하차하면서 남은 목화를 아파트에 심기로하여 퇴비와 함께 내렸고
22:00 온천장에서 신만님을 내려드리고 종친회에 물건을 올려두고 집을 향하는데 피곤이 몰려온다

 

실적보고(2002년)

구       분

내                                   역

홈페이지

중, 고교 3개 학교

종묘장 씨앗 1000여개

개인 : 50여명

시외 이식

대구 인흥세거지

군위 봉강서원

의성 공룡유적지옆

부산시내 이식

성안문중

초읍문중

북면문중

금사문중

반여문중

혜림사

의뢰한 곳

도천서원(충선공파 국장)

장연서원,강성서원(문남주)

인흥

충선공파 종회와 부산종친회의 공동사업인 목화 재배 확대를 위하여 병준충선공파 부회장, 차범부산종친회 총무, 병준님과 함께 목화 1포트(50포기)와 쌀과 찬을 준비하고 대구 화원의 인흥세거지를 방문하니 연락을 받으신 정기님(종손)과 태갑님(전 서울신문사장)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입구에 심어둔 목화가 30cm 정도 자라 있기에 가져간 것은 분재용으로 하신다고 했고
방문기는 사적지-집성촌-인흥세거지에 소개하였으니 참고하시시기 바랍니다.

봉강서원

나는 지도를 보면서 방향을 설명하고 병준님이 운전하여 물맑은 군위군 우보면 달산리에 가니 서원건물과 큰 정자나무가 보이고 마을에 들어가니 문경재(36세 054-382-5556 경북종친회 부회장) 봉강서원 관리위원장님과 문병만(36세 383-6676)님 문병휘(36세 382-5553) 문종선(36세 382-0593)님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서원입구의 밭에 목화를 심는데 비가 오지만 목화의 활착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 싫지않았다.
봉강서원에 들어가니 대문에 행랑이 2칸이고 서원은 누마루로 된 강당의 양옆에도 방이있는데 사용한지는 오래된 듯 하고
별도의 담장으로 구분한 신실의 대문은 무척 낡아서 보수가 시급해 보였고 익점선조의 영정과 문래선조님, 문영선조님 영정앞에 참배를 했다
서원옆집인 일가님 댁에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달산1리 및 2리의 32가구중 29 가구가 남평문씨인 군위군에서는 유일한 문씨집성촌이며 다른 곳에는 일가들이 없고 젊은이들은 대구나 안동 등지로 나가고 연로하신 분들이 고향을 지키는데 재실의 담장은 새로 보수하였다고 하시는데 한옥인 재실 유지에도 힘겨워 보이는 것이 안타까웠다.
서원 마루에 신문지를 깔고 돈육을 구워 소주잔을 돌리면서 일가들의 정을 두텁게 하고 종사도 의논하였는데 준비해간 쌀로 밥을 지으려고 했으나 일가들의 만류로 새로지은 점심을 대접받았는데 쌀이 좋은 탓인지 밥맛이 꿀맛이었다.
목화는 땅에 심고 일가의 정은 가씀에 담아 작별하고 의성 면화 시배지로 향했다 

의성시배지

의성에 도착하여 목화시배지를 물어서 고개길을 오르는데 도로 왼편에 100여평의 목화밭을 발견했는데 큰 것은 40cm 정도이나 발아가 좋지 않았던지 곳곳이 비어있고  어린 묘목들도 있었고
입구에 세운 삼우당 문선생 면작 기념비 비문에는
고려 공민왕때 삼우당 문익점 선생이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3년후 귀국할 때 금주성에서 면화종자를 필관에 넣어 귀국하여 그의 장인 정천익으로 하여금 경남 산청에 시험재배 한 것이 우리나라 면적의 시초가 되었다. 그후 조선 태종때 그의 손자 승로가 의성 현감으로 부임하여 금성면 제오리에 면화를 파종하여 오늘에 전하게 되었으며 1909년 지역주민들이 파종한 원전에 기념비를 건립하였고 다시 1935년 금성면 대라리 현 장소에 기념비를 세워 널리 알리게 되었다. 1991년 김우현 도지사 재임시 주변을 정비하고 면화를 파종하여 선생의 큰 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비를 세웠다.
1991년 의성군서 신상철(申庠澈)님이 세웠는데 나는 일가들이 세웠다고 된 기록을 보았는데 잘못이었다.

공룡유적지를 찾았더니 발자국이 있는 바위는 보호를 위해 천장을 투명하게 가렸고 조금 위에 세워둔 고향찬가란 노래비에는 금성산 오른팔펴 끌어 안았고   운곡천 굽이흘러 여울지 이곳  공룡은 억만년전 벽화 그렸고 선사인 고인돌에 깊이 잠든곳 붓대롱 목화씨 처음심은 이곳 문익점 그영광 오대정승 지내 오대동 대치벌 재오동이라네(2절생략) 1994 7.16 김현중 짓고 김희중 쓰다 라고 적혔다
 발기인은 김씨 12인 정씨 8명 허씨2명 임씨2명 윤씨와 강씨의 이름이 있지만 문씨는 없었고, 조금 위의 제오동 입구의 경로당 옆에 오래된 문익점 시배 공적비가 홀로 있기에 혹시 일가가 있나 하고 비를 맞으며 40여호의 마을을 돌면서 문패를 살폈으나 일가를 찾지 못했다
이곳에서 만난 전직 선생님의 말씀은 지금 경로당 이전이 추진되고 있다는데 충선공파 부회장님은 이전시 충선공파종회에 연락 주시면 비석은 우리가 옮기고 보호를 부탁한다며 연락처를 교환하고 부산을 향했다.

부산지역

부산의 금사문중은 묘목 50주를 갖여가 제실에 심어 잘 자라고 있고, 북면문중에는 7월 11일 이식하였으니 성안문중에 목화를 이식하기 위하여 2002년 7월 27일  나의 승용차에 목화를 실고 병준충선공파부회장, 차범종친회 총무와 병준님과 함께 승차하여 법기수원지 아래의 성안제실을 방문했다.
성안제실은 건물 뒤편에 공원묘지를 조성하고 회의실과 관리사로 구성되었는데 시멘트 기둥에 기와를 얹어 관리에 힘든 목조보다 건축비, 유지비가 비교가 되지 않고 화재 등에 장점이 있으니 다른 문중에서도 참고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공원묘지부터 참배하였는데 윗대부터 세수별로 모신후 지금은 별세하신 순서대로 묘를 써 내려가는데 30만원을 내면 영구히 보존한다고 하며 넓은 묘역엔 식수도 하였고 잔디를 심어 가꾸었는데 앞으로 200여기는 더 모실수 있을 것 같고, 대종회장을 지내신 분도 두분이 영민하고 계셨다.
입구의 좌측 문옆에 관리하시는 분이 잡초를 제거하여 두었기에 병준씨가 삽으로 땅을 파고 퇴비를 넣어 썩은후 내가 20cm 간격으로 목화를 이식하고 차범씨는 물을 주어 20주 이식하였고
주지스님이 일가님(경동 상근 부회장님의 동생)인 혜림사를 방문하여 대웅전 입구의 언덕에 목화를 이식한후 반여집(회장 문경동) 삼어부락의 산소 옆에 이식작업을 하고 초읍제실에 가기위하여 사직동을 거쳐 초읍으로 방향을 잡아 초읍제실에 도착하니 아지매가 기다리고 계시고 우선 묘지에 술한잔을 올리고 참배를 한후 지정한 장소에 목화를 심은후 내어온 냉커피는 일품이었고 작년 청사제때 제실의 촬영이 미비하였기에 양해를 구하고 제실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어느덧 저녁시간이라 삼어부락의 탕집에서 5명이 식사를 하면서 목화 보급에 대한 평가회를 하였는데 도천서원등 부탁한 곳은 목화를 심지 못했다고 하니 안타깝지만 부산종친회 창립 23년만에 종친회관에 목화 20여주가 꽃이 피고 있으며 첫해의 성과로는 만족하였다

후기

년말에 목화보급에 관한 사항들을 요약하면 인터넷을 통하여 씨앗을 주문한 분들 중에서는 목화의 자람에 대한 사진을 보내 주셨고(홈페이지의 질문과 답변-목화참조)
금사문중에서는 목화를 수확하여 종친회에 씨앗을 보내주셨기에 다음해의 씨앗이 확보되었으나
나머지 보급한 곳들은 꽃이 피고 다래가 맺긴 했으나 파종이 늦었던 관계로 씨앗을 수확하지는 못하였기에 2003년도에는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빠른 파종이 필요함을 느꼈다.
내년에는 확산을 위하여 목화씨를 뽑는 기구를 구하여 목화씨를 분리하고 지속적으로 시행하되
부산의 소문중 재실에서 목화를 길러 각 가정에 보급하며
4월 중순에 보온장치를 만들고 3,000여주의 묘목을 길러 지방자치단체의 화단조성에 사용하도록 기증하고 전남북 지역에 이식하고 심어둔 목화의 관리를 위해 중간방문을 하여 관리와 주위의 관심을 높이자고 했다.

  

목화관련 소식

산청 시배지의 전통 베짜기

 삼우당 문익점 선생의 고향이자 목화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경남 산청군의 전통 베짜기와 천연 염색 시연장이 새로운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산청군은 이달부터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에 문익점 선생이 처음 면화를 재배한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사적 108호목면시배지내 작업동에서 전통 베짜기와 천연염색을 선보이고 있는데 시연이 있는날이면 하루 평균600여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목화에서 뽑아낸 솜으로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감탄을 연발하면서 또한 치자 대나무 등 염색재료를 섞어 직접 물을 들여 보기도 하고 시배지내 문익점 기념관에서 우리 옷이 있게 된 역사적 배경도 되새겨 보는 등 시배지가 전통의복 교육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여평의 작업동에는 베틀과 베를 짤 때 씨실을 넣어주는 북, 베를 단단하게 역어주는 바디 등 베짜는 기구 한벌과 식물이나 광물에서 채취한 염액 용기등 천염염색도구를 갖추고 있다
천연염색 연구가 이산(42)씨가 베짜기를 각각 맡아 베짜는 직조, 무명천을 물들이는 천연염색, 바느질 등 3단계의 과정을 보여 주고 있는데, 대나뭇잎으로는 연노랑 연두색으로 물들이고, 치자로는 노랑색과 쑥색을, 홍화를 섞어서 암갈색과 적갈색을 만들어 내는 등으로 무려 50여가지의 천연염색 색상을 연출해 내며 내년부터는 매일 베짜기와 천연염색을 시연하면서 우리 옷의 우수성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산청군은 핸드백 손수건 지갑 모자 등 천연염색 상품과 캐릭터를 개발하는 등 관광상품화 방안도 갖고 있다 권순영 산청군수는 목면시배지는 성철스님을 기리는 겁외사와 불과 1km 거리에 있어 가족 관광 코스로도 각광받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신문  2001년 6월 26일 화요일 29면( 055-970-3221 이원재 기자wilee@kookje.co.kr)

 

발아와 성장

목화의 씨뿌림에서 자라는 모습을 담은 사진모음입니다

목화사진101

목화씨앗

파종후 3일

파종후 6일

파종후 7일

목화사진206

목화사진208

목화사진215

목화사진212

파종후 8일

파종후9일

파종후 9일

파종후 10일

목화사진213

목화209

목화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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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종후 10일

파종후11일

파종후 15일

파종후 20일

목화233

목화사진231

목화사진229

대구 화원의 목화밭

 자라가는 목화

목화의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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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라가는 목화

 성장한 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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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의 묵은 가지에서 난 목화의 새싹(목화는 다년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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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 꽃과 봉오리

목화는 포엽에 쌓여있던 꽃봉오리가 점점 길어진뒤에 꽃이 핍니다   꽃은 처음에는 희지만 
하루가 지나면 붉은 빛을 띄고 점자 붉게되어 꽃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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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봉오리

봉오리와 다래

개화직전 봉오리

아세아면(문익점 선생께서 전래한 품종) 목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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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꽃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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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림색으로 변한꽃

크림색으로 변한꽃

 분홍색으로 변한 목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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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들기 직전의 목화꽃

시드는 목화꽃

시든꽃과 봉오리

 

목화 다래(솜이되는 과정)

꽃이 지면 열매가 크지기 시작합니다. 야생 복숭아 크기가 되면 색이 누렇게 변하고 목화를 피웁니다
목화는 목화꽃과 솜꽃으로 두 번 꽃이 달리게 되는데 한 나무에서 위는 꽃이피고 아래는 솜이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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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꽃이 진 후에 솜을 만들기 위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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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어가는 다래와 솜이 터지기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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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솜425

목화솜601

다래가 여물어 터지고 솜이 피어나는 과정

 

목화

흰색의 목화는 아름답고 유용합니다. 솜은 점차 부풀러 크기가 크지는데 3개월 정도 지나면 부는 바람에 흗어져 날라가 땅에 떨어지고 습도와 온도가 맞으면 새로운 목화로 자라게 됩니다

목화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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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에 달린 솜(늦은 가을의 시배지)

목화솜과 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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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솜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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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솜636

 솜이 터져나온 과정 이후는 솜을 따서 씨아로 씨와 솜을 분리하게 됩니다.

 

 

목화 재배장

산청과 의성에는 목화시배지가 있어 목화를 기르고 있습니다.
각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상을 하여 기르게 하거나 관광용으로 기르는 곳도 많습니다.

목화새비지914

목화시배지916

2002 봄 목화 시배지(경남 산청군 신안면)

목화시배지913

목화시배지915

목화시배지의 목화재배 광경

2002년 가을의 시배지

목화시배지912

2002년 시배지의 근경

2002년 시배지의 근경

목화시배지731

1970년대 시배지 모습

남평문씨목화재배장

남평문씨목화재배장933

남평문씨 부산종친회 목화 재배장

남평문씨목화재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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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문씨 부산종친회 목화 재배장

남평문씨 부산종친회관 화단

남평문씨종친회 목화

남평문씨 부산종친회 목화재배장922

남평문씨 부산종친회관 화단

2006년도 부산 오륜동의 목화재배장 밭갈이 작업

 
 
 
 
   
   

부산종친회 화단의 간이 비닐하우스의 묘목재배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묘목

 

2006년도 부산종친회관 화단의 목화

2006년 여름 부산 온천천의 목화 수해

온천천 목화의 수해 복구

부산 온천천의 목화 수해 복구

 

목포시험장
http://mokpo.nics.go.kr/100year/cotton.asp 

아시아면

도입 :  1367년 (고려 공민왕 17년)  재배 :고려시대 -> 10년 이내남부지방에 보급
조선시대 -> 세조때 전국 확대, 태종때 면포 일본수출 1905년    -> 재배 면적119천ha, 4만5천톤 추정

육지면

도입 :  1904년    재배 : 목포대안 고하도에서 시험재배   1905년 이후 목포 채종포 경영. 우량종 보급
1944년 약 32만ha 재배  1988년 이후 거의 재배 안함  2004년 현재 소멸

연구 시작

 1904년 이전 저수량, 단섬유인 아시아면재배      1904년 다수성, 양질의 육지면 시험재배 성공   
   1906년 권업모버장 목포출장소 발족(목화시험장)

연구 개요

1906 ~ 1911 : 우량종 채종 증식보급        1910 ~ 1918 : 도입품종 적응검정
   1911 ~ 1986 : 재배법 개선, 병해충방제, 맥간작시험   * 1926년 교잡육종시작 → 1981년 이후 중단

주요 육성품종의 특성

육성년도

육성방법

품 종 명

주 요 특 성

1909

도입육종 

Kingsimproved

조숙

1923

계통분리

113의 4호

조숙, 다수

1926

계통분리

380호

고조면율, 다수

1945

교배육종

목포 3호

고조면율, 다수

1953

교배육종

목포 4호  

대삭, 고조면율, 다수

1953

교배육종

목포 5호  

조숙, 고조면율, 다수

1969 〃

교배육종

목포 6호

조숙, 장섬유, 다수

1979 〃

교배육종

목포 7호

조숙, 장섬유, 다수

1996

순계분리

목포 8호

조숙, 고탄력성, 다수

 역사스페샬  http://www.kbs.co.kr/1tv/sisa/hdhistory/vod/vod/index,1,list,3.html

 

목화 재배하는 곳(2006년도)

내           용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낙산공원내 흥덕이네 밭
조선의 효종이 청나라의 인질로 있을 때 모셨던 나인 홍덕이 채소를 길러 김치를 올렸는데 왕이 된 후에 홍덕이네가 만들어주었던 김치의 맛을 잊지 못하여 낙산 밑에 밭을 주어 흥덕이로 하여금 채소를 길러 김치를 만들어 바치게 했다는 홍덕이네 밭에 목화를 재배하고 있다

송파구

 

구청및 동사무소및 주민에 분양

부산시

금정구

오륜동

 100여 평에 인터넷을 통한 무료의 목화씨앗 분양을 위하여 아세아면과 육지면 재배와 주말농장운영

부곡동

금정구청 앞 도로변의 부산종친회 회관 화단

동구

초량동

동구청 입구와 중앙로의 정발장군 동상주변에 100여평에 전시

영도구

봉래1동

봉래로타리에 목화 50박스 조 등을 배치함

북구

구포동

낙동강 시민공원 횡령터널 입구

강서구

 

낙동강 시민공원 횡령터널 입구

동래구

안락동

충열사 경내

온천동

송월타올 뒤의 온천천변에 20여평 재배

연재구

연산동

온천천 관리사무소에서 온천천에 재배하여
목화꽃과 단풍든 잎과 열매인 다래, 솜꽃의 3가지를 10월의 도심에서 볼 수 있다

인천시

부평

 

부평서 초등학교(교장 김성수)  200여 송이 전시 목화의 유래, 쓰임새 등을 공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경관 보전 직불제(목화등 재배시 소득보상) 1㏊이상 집단화되어야 하고 마을단위로는 총 3㏊이상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9 월경 목화체험행사 목화축제  목화솜따기와 목화의 씨앗을 타서 쿠션 아기이불등 즉석에서 제작
무농약으로 키워 어린이들에게 좋은 제품을 생산한다

문막 나들목을 벗어나 5분정도 거리    문의 : 건등3리마을대표 [이범섭 : 011 - 362 - 1308]
면화의 강원도 사투리인 메나골은 마을 전체가 목화공원이되어 흰솜이 천지를 덮는다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초현리 산37번지은아목장은 꽃으로 계절의 변화를 알리고 있는데 가을의 꽃은 목화이다 
양평에서 37번 국도로 여주로 가다보면 국도변에 젖소모형도 아래 ‘우유는 사랑입니다’ 안내판있슴

포천시

소흘읍

광릉숲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광릉숲에 목화 재배   문의 : 집행위원장 이상천(031)571-0169

충북

청주시

사직1동

사직1동 새마을지도자협의회 회원 35명은 용화사∼제1운천교 구간 무심천 둔치에 목화밭을 만들고 파종하여 솜을 따 혼자 사는 노인 등 생활이 어려운 이웃에게 이불을 만들어 줄 계획이다.
박광옥 사직1동장은 “문익점 선생이 목숨을 걸고 도입한 목화씨 한 톨이 조선 중기의 막대한 변화와 혁신을 가져왔듯이 목화의 성장과정을 보는 어린이들이 선생의 큰 뜻을 배우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풍광초등학교(교장 장병학)에서는 교과서에만 나오는 목화나 도라지, 수수 등 20여종의 작물을 전시

옥천군

옥천읍

읍장 이우종님은 4번국도에 재배한 목화 40kg을 수확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kg당 1만원에 판매하여 불우이웃 돕기로 따사로움을 나누고 있다

청원군

강내면

궁현2리 연꽃마을과 자매결연을 맺고 목화대 뽑기 등의 일손돕기를 했다.

충남

 

 

경관보전직불제 지자체와 10a(300평)당 17만원을 협약후 보상

경북

상주시

북문동

오랫동안 목화연구를 해온 상주대 이광우(의상디자인학과) 교수로부터 목화씨를 얻어
북천둔치 360평과 연원동 250평과  도로변 등에 심었으며 내년부터 대폭 확대한다고 한다
상주는 쌀, 목화, 누에고치가 유명해 삼백의 고장이었으나 곶감이 그자리를 차지했다.

영동읍

 

로터리내  의류점을 경영하는 오명주(40)씨와 송임순씨(39)가 15개의 화분에 나눠 심은 60포기의 목화가 희고, 붉은 빛을 뿜고 있어 행인들과 차량운전자들의 시선을 잡고 있다.

의성

탑리

의성 목화시배지

문경시

점촌5동

이유승동장은 아파트주변 자투리땅 500여평과 아파트 단지등에 재배권장

경남

산청

신안

목화시배지의 목화재배장 목화시배지 옆 마을입구(권외진여사 500여평 재배)

전남

곡성군

검면

목화축제 2006년 9월16~17일(2일간)   주제 : 자연과 함께 아름다운 세상 만들어요  
목화종자 파종부터 재배·생산·목화솜타기등 목화가 옷감으로 되기까지의 과정을 한눈에 보면서 체험도 할 수 있는 목화전시체험관이 볼거리이다 목화공원(6000여평)과 뚝방길에 목화재배

 후원 : 곡성군 검면 기관및 사회단체 재광향우회 kbc방송
 교통 : 곡성IC 국도 27번도로 40분소요, 검면사무소
          옥과IC 국도 27번도로 30분소요, 검면사무소  
          솜 20,000원/ KG 종자 15,000원/KG에 판매해 축제기금 조성      전화 : (061)360-8224

보성군

미력면

미력면 문창선면장은 MBO(목표기반관리제)의 목표를  문익점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면내의 텃밭을 이용하여 목화를 재배하고  수입은 불우이웃 돕기한다고함

순천시

낙안읍

읍성내 민가에 목화 재배

고흥

남양면

고흥~벌교 국도변 아평마을 입구에 1천여평,  남양마을 입구에 300여평에 목화 10kg 파종하고
씨앗을 받아서 확대 파종할 계획이다

무주 나제통문앞

5ha 정도의 목화와 메밀농업기술센터 원예기술담당은 “꽃이 만개하는 6월말에서 7월 중순 경에는 재배단지 인근의 라제통문과 구천동 관광단지, 그리고 리조트 등지와 연계하는 무주군 또 하나의 명소가 탄생하게 될 것”이라며, “경관작물 재배단지는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아이들 현장교육의 장으로도 활용이 가능해 가족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무주군은 경관작물 재배농업인들에게 목화는 ha당 6천원, 메밀은 ha당 3천990원을 종자대 및 소득보전지원금으로 지원하고 있어 농산물 수입개방 등으로 불안해진 농가소득에도 보탬이 될 전망이다.

춘천산골에 하얗게 핀 목화

17일 강원 춘천시 남산면 광판리 섬배마을 주민들이 꽃망울을 터뜨린 목화밭에서 수확을 하고 있다. 이 마을은 다음달까지 목화밭을 이용해 농촌 체험행사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문익점 선생 가져온 동양면 우수성 알려야죠"
7년째 재래종 목화 재배, 권외진씨
경남일보2008년 10월9일 남병희 기자  

 “아시아 목화는 산청군의 자랑이며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지역문화입니다.”
 산청군 단성면에서 7년 동안 재래종 목화인 동양면(아시아면)을 고집스레 재배하고 있는 권외진(57·여)씨.
 권씨는 지난 2001년 전남 무안군 목포 목화시험장을 우연찮게 견학하면서 아시아면 목화꽃을 처음 접하고 그 꽃의 아름다움에 반해 시험장에서 목화씨 20여 립을 분양 받아 7년 동안 단성면 배양마을에서 재래종 목화를 재배하고 있다.
 산청군 단성면에 위치한 사적 제108호인 문익점 목면시배유지는 문익점 선생이 목화씨를 가져와 그의 장인 정천익 선생이 목화를 처음 재배한 곳으로 목화시배지 비석과 100평 정도의 목화밭이 있으며, 목화의 생태와 실을 만드는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200여 평 규모의 목화 전시관도 위치해 있다.
 문익점 선생의 뜻을 기리며 이곳 인근 밭에서 1000여 평 규모로 목화를 재배하고 있는 권외진씨의 목화사랑은 단순히 목화를 재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문익점 선생 21대 증손부 황기수 선생으로부터 목화실 뽑기와 베짜기 기술을 전수받았다는 권씨는 단성면 소재지에 위치한 한 건물 3층에 목화연구소라는 작은 간판을 걸고 직접 재배한 목화에서 수확한 솜을 타서 무명베를 만들고 천염염색과 누빔의류 등을 만들며 무명베의 아름다움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또한 문익점 시배지에서의 베짜기 체험학습과 진주 개천예술제 등에서의 베짜기 체험지도를 통해 동양면의 우수성을 알리고 동양면 목화 논문을 발표하는 등 학술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다.
 크고 둥글둥글한 형태의 개량종 목화는 크기가 커서 솜의 양은 많지만 솜이 질기지 않아 질적으로 떨어지는 반면 작지만 네 뭉치의 솜이 달려있는 모양이 또렷한 재래종 목화솜은 솜양은 적지만 실이 질긴 편이며 꽃 또한 화환이 있는 점이 개량종과 구별된다.
 일제시대에 일본 사람들이 들여온 개량종으로 인해 현재 재래종이 거의 자취를 감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권씨는 “목화를 처음 재배한 산청에서 만이라도 재래종 목화가 널리 재배 돼 산청의 자랑거리가 되길 바란다”며 작은 소망을 전하기도 했다.
 7~8월에 흰색과 노란색 꽃이 피고 9월말부터 11월까지 솜이 피는 재래종 목화. 지금 1000여 평의 목화밭에는 늦게 피기 시작한 노란색 목화꽃과 솜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가을 단풍을 찾아 지리산으로 가는 길목 단성면에서 잠시 쉬어 목면시배유지와 목화전시관을 들러 목화에 대해 알아보고 문익점 선생의 위민정신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시간이 좀 더 허락되면 권외진씨의 목화연구소를 들러 차 한잔 하며 동양면 목화에 대해 논해 보는 것도….

 
무명 베짜기 목화축제 열려
9~11일 산청 목면시배지
2008년10월9일남병희 기자 nambh@gnnews.co.kr  
 하얀 목화솜이 피어나는 산청군 목면시배유지에서 목화축제가 열렸다.

 박추자 매화판소리연구소가 주최하고 산청문화원 민요교실이 주관한 이번 행사는 국악인 박추자 선생이 지도하는 산청문화원 민요교실(회장 박분남) 회원들이 이 땅에 처음으로 심어 전국으로 전파되었던 목화의 고장 산청을 널리 알리고, 목화솜에서 무명 베짜기까지의 전 과정을 우리 조상들이 예로부터 하던 방식대로 재현하면서 ‘베틀노래’ ‘물레노래’ 등 민요를 곁들여 한층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산청 목면시배유지 목화밭 일원에서 펼쳐진 이번 목화축제는 민요교실 회원들이 틈틈이 배우고 익힌 기량으로 풍물놀이, 살풀이, 판소리, 가야금병창, 남도민요 등을 공연하여 관광객들에게 흥겨운 우리 민요의 멋진 가락을 선사했다. 박추자 선생의 문하생들이 찬조 출연한 학생국악공연도 큰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v

 또 목화축제 행사기간 동안 목화밭에서는 직접 목화솜을 따서 씨앗기, 물레잦기, 무명 베짜기 작업 등이 직접 시연되어 어른들에게는 옛 추억을 떠올리고 학생들에게는 보기 드문 체험교육의 장이 되기도 했다.

 한편 군은 올해 처음 열린 목화축제가 많은 관심을 끌면서 매년 가을마다 특색있는 축제로 육성시키고 한방약초축제 등 각종 축제시 이들을 초청, 공연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